[70대 노인 환자의 이야기]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고통. 무슨 일일까 지금까진 괜찮았는데. 어느덧 내 나이도 이렇게 되었던가, 병원으로 간다. 정신없는 어느 대형병원.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누워서 시름시름 앓아가고 있다. 여긴 병을 고쳐준다는 곳이 아니었던가? 마음속에서 작은 혼란이 나를 휘감는다. 엉겁결에 병원 수속 절차를 밟고 병실을 맞이한다. 젊은 의사들이 수많은 기계와 바늘들이 내 의견은 무시한 채 당연하다는 듯 비정상인 곳이 어딘지 찾아본다. 흠, 일단은 의사들이니 그들을 믿어 보기로 한다.
결과가 나왔다. 생각보다 내 몸은 병들어 있었다. 그렇기도 하지. 인정하긴 싫지만 마음은 젊지만 내 껍데기는 벌써 노인이 다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젊은이들은 온갖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내 귀를 괴롭힌다. 무슨 약도 먹어야 하고 수술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불평을 한 들 괜히 의사들로부터 낙인찍힌 환자가 되는 게 두려워 '착하게' 순응한다. 어찌 하루아침에 내 삶이 이렇게 된 것인지, 고통스럽다.
어느덧 어연 2년이 흘렀다. 내가 이렇게 장기입원을 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창밖으로는 따스한 햇살이 내 팔을 감싼다. 이마저도 내 몸은 이겨내질 못한다. 괴로워하며 잠시 눈을 감는다. 그 와중에도 병실 밖에서는 흰옷 입은 젊은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휴. 그립다. 누군가와의 유대감을 느껴본 지가 언젠지. 눈을 떠보니 내 앞에서 주치의가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쉬고 있었다.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주저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돌아가려는 주치의를 마지못해 부른다. 오랜만에 대화라는 것을 해서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난 알 수 있었다. 주치의의 행동은 마치 기계적인 행동이었음을. 다시 혼자가 된 나. 쓸쓸히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을 숨긴다.
내 신체는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급속한 악화를 막고 있다는 것에 안주해야만 했다. 고통스러운 이름도 어려운 약들을 먹어가며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간다. 왜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젊은 시절의 난 찬란한 노후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결국은 이루지 못한 것인가? 내 삶의 제3 막은 실패작인가 보다. 우월한 유전자, 행운, 두꺼운 지갑, 그리고 착한 딸 하나 두지 못하였음을. 평소에 운동, 식습관 관리, 금연하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는데 뒤늦은 후회다. 이젠 안녕.
[30대 의사의 이야기]
평소와 다름없는, 정신없고도 피곤하기 그지없는 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익숙한 신음소리, 시끄럽게 울리는 호출 벨이 내 고막을 찌른다.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도 여전히 씻을 수 없는 피로가 내 어깨를 누른다.
오늘도 새로운 환자를 맞이했다. 언뜻 봐도 노인처럼 보인다. 병원에선 하도 많이 봐왔던 익숙한 부류의 하나일 뿐이다. 여러 가지 기계들과 바늘들을 챙겨 환자를 검진해본다. 정상인 곳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예상컨대 이 환자는 아무리 오래 살아봐야 몇 년 못 살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인가, 그렇게도 힘든 생활을 견뎌 당당히 의사가 되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으로 이 환자를 살리겠다는 마음가짐이 내 심장을 불태운다. 다행히도 이 환자는 내 일과를 방해할 사람으론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착한' 환자임에 만족한다.
일단 최우선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급성 질환들과 당장의 고통을 줄여주는 조치를 취한다. 단편적인 고통을 치료할수록 하나둘씩 다른 질병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일단 급한 불부터 끄기로 결정한다. 환자의 배경 상황이나 시간 추이를 고려할 여유는 없다. 병원이란 한정적 자원과 시간을 이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분야 간 공조 또한 힘들다. 안타까운 의료환경을 꼬집지만 어쩔 수 없다는 현실에 순응한다.
어느 때처럼 병원에서 근무하던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따스한 햇살을 바라본다. 아, 이토록 좋은 날씨에도 놀지 못하고 일에 절어 있구나.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를 뜨려 하는 찰나, 어느 환자가 나를 부른다. 어느덧 그 환자도 이 병원에서 2년 동안이나 머무르고 있었다. 노인이니 최대한 공손하게 대해 본다. 환자가 뭐라고 주저리주저리 한다. 일단은 들어본다. 삶의 목적, 의미, 유대감에 목말라있다는 대충 그러한 이야기였다. 겉으로는 "아, 저도 하루빨리 완쾌하셔서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라 하며 속으로는 그저 그런, 나이 먹으니까 저런 얘기를 바쁜 의사를 잡아놓고 왜 하는 건지 불평을 떤다. 어휴, 노인들이란. 다시 내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책 <나이듦에 관하여>는 의학의 발전으로 인한 인류의 수명의 증가와 질병 치료의 수준의 상승이 일어난 지금 노령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노인의학의 발전은 그에 발맞춰서 발전되지 못하였고, 언제나 노인은 의료에서 제일 배제돼 왔던 비참하고도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나이를 먹을수록 맞춤의학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의료 시스템은 단순히 약, 수술, 재활치료 등 질병과 치료법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진정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돌보는 의료 행위는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노인 환자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돌보는 의료' 행위와 의사들의 무조건적 '치료' 행위의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한다. 환자와 의사 간에서는 무조건으로 의사가 갑이다. 따라서 환자들은 그들의 말을 순종하며 그들의 생각이 절대적을 옳다고 믿어버리며 자신들의 몸을 바친다.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병원도 사업을 하는 곳이다. 환자의 회전율과 비싼 수술을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노인들은 밀려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쓸쓸히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위에 작성된 두 글은 책 <나이듦에 관하여>에서 다루는 의료현실, 노인 환자들의 목적, 의사들의 생각 그리고 책을 읽고 느낀 나의 상상력 등을 녹여서 수필 형식으로 작성해보았다. 윗 수필을 읽고 각자 느꼈던 생각들을 댓글로 작성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20대인 나에게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지는 '노인'이란 단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본인들의 제3 막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도움을 주는 책, <나이듦에 관하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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