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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유럽 흑사병의 역사와 결과를 이 시국과 비교를 해본다면?? (feat.역사는 반복된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생활에 일시 중지, 멈춤, 혹은 퇴보하게 되어 버린 현 상황에서, 인류는 언제나 역사를 되돌아보며 앞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현 상황과 과거에 비슷한 역사를 겪었던 유럽 흑사병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를 알아보면서 지금 현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과거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먼저 흑사병이 일어난 14세기 당시에는 흑사병이라 불리지 않고 대전염병이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 이후 16세에 유럽의 연대기 작가들이 14세기에 일어났던 대전염병을 흑사병이라 칭하며 책을 발간했고 이 명칭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1347년, 유렵에 흑사병이 도달하기 전 당시 상황은 인구가 증가하고 온화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농사를 더욱 많이 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인구 증가는 자연스럽게 식량 부족이란 문제를 초래했고 이로서 1315년부터 1317년 사이에는 든 유럽 전 지역에 식량이 부족해지게 되었습니다. 즉, 흑사병이 도달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은 이미 질병에 쉽게 걸릴 수 있는 취약한 신체를 다들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농사 시작 -> 인구수 증가 -> 식량 공급 불균형 -> 식량 감소 -> 체력 저하

 

이러한 상황에서 1347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흑사병이 찾아옵니다. 전쟁 중에 갑자기 찾아온 흑사병으로 확산이 더욱 급속화되었으며 전쟁과는 별개로 중국과의 활발한 교역 때문에 흑사병의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어가며, 배가 항구에 들어올 때 의심증상이 있는 환자의 배는 상륙을 막으며 격리시키는 조치를 유럽에서 최초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쥐를 통해서도 병이 전염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조치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당시 유럽 대학에서는 신학과 철학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있던 탓에 흑사병의 원인을 현재 우리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도출해냅니다. 흑사병이 생긴 이유는 토성, 목성, 그리고 화성이 궤도상으로 지나치게 겹친다는 답변을 말이죠.

 

저리 가, 나 죽기 싫어. 그게 부모건 형제건 저리 꺼저.

이러한 상황 속에 특히 동물에서 사람으로의 감염은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영역에 일이었으며, 뚜렷한 대책이 없어 기도와 회개를 하는 것에 전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면서 결국에는 자신의 자식, 부모, 형제를 서로 버리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무자비하게 죽어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교회와 통치자들의 권위가 크게 하락하기도 하였습니다. 막상 그들도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많이 죽어버렸고 설령 살아있다 하더라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은 이 분노와 절망의 표출을 애꿎은 희생양인 사회적 소주자였던 유대인이 수많은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와 비슷한 점을 유럽 흑사병과 비교해본다면 크게 3가지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1. 동물로의 전염 - 현재로선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박쥐로부터의 전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2. 무능력한 통치자 - 우리가 믿어왔던 선진국들의 무능력하게 무너지는 의료체계로부터 오는 그 나라 국민들의 한탄이 이 현상을 마무리 지은 다음에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회의적 시선과 혁신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3. 억울히 희생된 유대인(차별) - 초기 정보 제공에 무심한 중국 정부 덕에 일어난 현상으로 인해 억울하게 아시아인들이 차별받게 된 경우가 해당됩니다

 


지금까지 유럽 흑사병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